K-POP처럼 K-MED도 곧 뜰 겁니다! - 안과 김명준 교수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친구의 얼굴도, 늘 지나가던 학교 앞 거리도. 하다못해 골목에 놓인 작은 쓰레기통마저도 뭔가 낯설고 매력 있어 보이게 만드는 물건. 필름 카메라는 참 이상한 물건이었다. 카메라로 찍으면 어떤 피사체든 새로운 아름다움이 그 사진 안에 담긴다. 그래서 청년은 카메라로 보는 세상이 좋았다. 크고 화려한 것들 보다는 무심하게 지나치는 작고 소소한 것들에 일부러 카메라를 들이대던 시절. 인화지 속에서 번져 나오는 피사체의 낯선 아름다움에 빠져 한번 암실에 들어가면 쉽게 나올 수가 없었다. 사진을 찍고 인화하며 청년은 보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보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청년의 맘에 쏙 드는 예쁜 사진 몇 장을 발견했다.
분명 파란색은 파란 색인데, 세상에는 존재할 것 같지 않은 매혹적인 파란색, 또는 초록색 또는 갈색의 사진들. 우주처럼 깊으면서도 구슬처럼 앙증맞은 사진들의 정체는 바로 사람의 홍채를 확대한 것이었다. 사람의 눈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는 사실이 청년에겐 감동이었다. 사진을 사랑하던 청년은 그렇게 안과 의사가 되었다. 서울아산병원 김명준 선생님이 전공을 결정하게 된 이야기다.
보는 즐거움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던 청년이었으니, 그 수단이 되는 눈이라는 장기에 매력을 느끼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헌데, 눈을 사랑하는 선생님을 심란하게 만드는 한 가지... 바로 병원 괴담이었다. 각막 이식을 위해서 안구를 적출해오는 밤, 왠지 서늘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눈 없는 시체가 눈을 돌려달라며 따라오고 있더라... 를 비롯해 병원엔 등골 오싹한 이야기들이 왜 그렇게 많은지. 그런 이야기를 꺼내며 의대생의 사기를 꺾는 사람들에게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눈이라는 장기를 사랑하게 된 선생님의 두 번째 사연이다.
별것도 아닌 유행성 눈병을 앓았던 6살 소년
헌데 드물지만 심한 합병증이 양쪽 눈에 생기면서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수 차례 수술을 했지만 결국 시력 유지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시신경이 손상되는 것을 막을 수 없었던 것. 어느 날, 병원을 찾은 소년의 손에는 햄버거가 들려 있었다. 소년은 맛있게 드시라며 의젓하고 행복하게 선생님에게 햄버거를 양보했다. 고속버스를 타기 전 강릉 터미널에서 엄마가 사주었던 것을 병원에 올 때까지 먹지 않고 가져왔다는 것이었다. 그 고마운 햄버거를 받아 들며 선생님은 뜨거운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시력이 점점 더 안 좋아져서 결국 실명하게 된다는 암울한 의학적 전망을 소년의 부모에게 말해야 했던 날이었다. 선생님은 소년에 대한 안타까움과 의사로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자괴감을 오랫동안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 이후론 강릉이란 단어를 들으면 낭만적인 동해바다가 아니라 그 소년 생각이 난다고 하시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이 간다. 생일 파티를 하다 폭죽이나 케이크 고정용 심에 눈을 다쳤다... 유리병이나 라이터가 깨지면서 눈을 다쳤다... 대학병원 안과 의사로 있다 보니, 시도 때도 없이 응급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응급실에서 호출이 올 때마다 선생님은 행여 치료시기를 놓쳐 환자에게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지 마음이 다급해진다. 사람에게 눈이 얼마나 소중한 장기인지를 선생님은 어떤 환자보다도 더 절실하게 느끼며 살기 때문이다.
김명준 선생님에게 눈의 소중함을 일깨워준 세 번째 인연은 공학도 출신의 연구원들이다.
안과 관련 세미나가 있던 현장에서 만난 연구원들. 눈에 대해선 일자무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들의 목표는 초음파 영상장비와 원리가 같은 광학 영상장비인 OCT 기계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눈에는 투명한 조직이 있기 때문에 빛을 이용하여 영상을 얻을 수가 있다. 빛을 이용해 눈에서 조직이나 세포수준의 단면영상을 얻는 기계가 바로 OCT 이다. 미국에서 처음 개발해 이미 여러 해외 업체가 시장을 선점한 OCT 기계를 국산화 하겠다던 연구원들. 한 술 더 떠서 그들의 최종 목표는 놀랍게도 K-POP처럼 K-MED 열풍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그 목표를 위해 논문을 찾고 해외 학회를 찾아다니던 중이었던 것. 선생님은 그들의 뜨거운 열정과 거창한 꿈의 크기에 반해 버렸다. '한국의 의학
발전을 위해 공학자가 이렇게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의사인 나도 힘을 보태야 한다'는 사명감이 생겼다는 선생님은 요즘 연구원들과 함께 광학을 공부하는 중이다. 어릴 적 조립모형을 만들며 잠시 그려보았던 공학도의 꿈에 다시 도전하는 기분이라는 선생님. 공부가 즐겁다고 한다.
엔지니어가 이루어가고 있는 꿈이라면, 사진을 찍던 대학생 시절 영상을 다뤄보고 싶다는 선생님의 또 다른 꿈은 벌써 이루어졌다.
백내장수술과 라식 등 굴절수술을 연구하는 학자들의 모임인 미국백내장굴절수술학회. 이곳에선 해마다 학술 동영상들을 심사해 시상식을 갖는다. 의사들에게 필요한 광학 지식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애니메이션을 이용해 8분짜리 비디오를 만든 선생님. 이 영상이 미국 학회에서는 퀄리티 티칭 (Quality Teaching)상을, 게다가 아시아태평양 학회에서는 대상까지 받았다고 하신다. 선생님의 연구실 놓인 오스카 상처럼 생긴 트로피 세 개는 바로 그 증거물들이다.
조금 색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의사, 엔지니어, 사진작가라는 세 가지 꿈을 놓지 않고 사는 선생님.
꿈이 많은 덕분에 환자 진료에 광학 공부에 영상 편집까지... 하루하루가 빠듯하지만, 선생님의 표정엔 지친 기색이 없다. 꿈이 있는 사람은 피곤한 줄도 모르고, 쉽게 늙지도 않는다고 하지 않는가? 얼른 김명준 선생님에게 사인이라도 받아둬야 할 것 같다.
K-POP처럼, K-MED도 곧 뜰 겁니다. - 안과 김명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