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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생아중환자실 에세이] 어리고 여린 너와 나, 우리의 봄을 찾아서_어린이병원간호팀 천유진 주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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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 2023.06.09 | ||
[신생아중환자실 에세이]어리고 여린 너와 나, 우리의 봄을 찾아서
"아기의 탄생을 축하 드립니다! 입원생활안내를 시작하겠습니다." 새 생명의 탄생, 축복과 기쁨만이 있어야 할 순간이지만 면담실에는 슬픔과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앉아 있는 한 남성이 있다. 이 남성은 방금 아빠가 된 동시에 세상에 조금 일찍 나온 아이의 보호자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 아직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지 않은 간호사가 매일 8시간 동안 온전히 돌봐야 할 새 생명과 마주하고 있다. 축하와 위로, 기쁨과 슬픔이 공존하는 이곳이 어리고 여린 사람들이 함께 하는 신생아중환자실이다.
우리 모두 처음이기에 세상에 조금 일찍 나온 아기는 혼자 숨쉬는 법을 몰라 인공호흡기의 도움이 필요하고, 아픈 아이의 부모님 역시 엄마 아빠의 역할이 처음이라서 모든 것이 두렵고 낯설다. 신규 간호사 시절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호와 돌봄이 벅차게 느껴질 때 울고 있는 아기 옆에서 같이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당시 선배 간호사 선생님은 "신규 간호사는 시간 맞춰 약 잘 주고 밥 잘 주면 그것만으로도 휼륭해"라고 말해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저 옳은 말이었다.
의료진의 치료와 돌봄 속에서 아주 작에 태어난 아기들의 몸무게는 1kg이 넘어가고 한 달 사이에 키가 한 뼘이나 자랐다. 아기들의 성장과 함께 나도 어느덧 7년차 간호사가 되었다. 내 하루는 병동을 돌아다니며 어제 돌본 아기가 밤새 잘 잤는지, 컨디션이 괜찮은지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한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작은 몸에 주렁주렁 달고 있는 의료기기를 보며 바로 옆에서 힘이 되어주겠다는 책임감을 느낀다.
신생아중환자실은 아픈 아기들을 간호하며 숨가쁘게 돌아간다. 아기들은 감염 등의 이유로 품에 안길 수 없고 그 흔한 봉제 인형 하나 가지고 있지 못한다. 하자만 이곳에서는 모두가 미소짓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심심해하는 아기에게 라텍스 장갑을 묶어 만든 동물 인형을 선물해주고, 프린트한 그림을 가위로 오려 모빌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일회용 드레싱 키트를 잘라 '엉덩이 말려주는 사랑의 부채'라는 이름을 붙여 잦은 설사로 아픈 엉덩이를 부채질 해주기도 한다. 시선이 닿는 곳곳에 우리의 애정과 고민이 담긴 돌봄의 순간들을 발견할 때마다 비로소 내가, 우리가 신생아중환자실의 엄마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충분한 사랑과 돌봄으로 이곳에서의 길었던 여정을 마치고 아기는 엄마와 함께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한다. 보호자는 어느새 오동통하게 살이 오른 얼굴로 엄마의 손길보다 내 손길이 편안하게 느끼는 아기의 모습을 본다. 그 순간 나는 보호자의 표정에서 서운함과 동시에 '내 아이가 이곳에서 충분한 사랑과 돌봄을 받았구나'라는 신뢰와 안도감을 본다. 우리의 애정 어린 간호가 어쩌면 그들의 마음 한 켠에 자리잡은 죄책감까지도 덜어주는 것 같았다.
매일 새로운 생명의 탄생 앞에서 눈앞에 이 조그마한 아기가 건강하게 집으로 돌아기가 위해 겪어야 할 여정이 선명히 그려지는 순간, 인큐베이터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보호자의 마음을 이제는 어렴풋이 알 것도 같다. 조심스레 건네는 휴지에 위로를 담아본다. '우리가 잠시 동안 이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 잘 돌보겠습니다.'
아가야, 봄이야. 설령 꽃샘추위에 눈이 오더라도 어린 가지에, 어린 뿌리에 녹아 물이 되고, 또 우리가 양분이 될 테니 우리에게 주어진 이 계절을 함께 애써 잘 견뎌내어 보자. |